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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자영의 금요칼럼]국회무용론(79) 12.3 계엄이 고도의 통치행위로 합법적이라고 하는 윤석열의 주장은 개인의 억지를 넘어 1987 헌법의 비민주 제도적 결함 노정

최자영 | 입력 : 2025/03/29 [22:03]

 

 

‘고도의 통치행위’ 여부 판단은 대통령에게서가 아니라 국민투표로써 내려져야
탄핵은 합법성과 무관하게 창조적 정치의 영역이므로 헌재가 간여해서는 안 돼
헌재 재판관 김복형이 위헌, 위법 행위를 위헌, 위법 아니라고 강변
고대 아테네 도편추방은 불법, 위법과 무관하게 위정자를 예방적, 선제적으로 추방

권한 정지 상태에 있는 윤석열과 그 변호인은 12.3 내란이 고도의 대통령 고유 통치행위로서 합법적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 ‘고유의 통치행위’와 ‘합법적’이라는 두 가지 개념이 등장한다. 전자는, 자신이 한 위법한 행위를 ‘고유의 통치행위’로 정당화하는 윤석열의 입장이 어거지라는 그런 차원을 넘어서서, 제도적 결함을 노정한다. 대통령 행위의 잘잘못에 대해 감독, 평가,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변변치 않다는 사실을 뜻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발동한 12.3 계엄을 국회에서 바로 해제했다. 그런 다음 살펴보니, 그 계엄이 요식행위조차 갖추지 않은 불법 행위였음이 드러났다. 명백하게 현행법을 어긴 행위이며, 그 때문에 탄핵되어 직무정치 상태에 있음에도, 윤석열은 스스로 자행한 불법 행위를 ‘고도의 통치행위’였던 것으로 정당화하고 있다.

윤석열뿐 아니라, 국회 내에서도 소수당이 그런 주장을 옹호하고 있고, 또 명색이 헌법을 수호한다는 헌법재판소 내에서도 이견이 있다. 그 재판관 김복형은, 국회 추천 헌법재판관을 3명 임명하지 않은 한덕수 등의 위헌 행위를 두고, 위헌, 위법이 아니라는 의견을 공공연히 적시했다. 일전 헌법재판소 자체에서, 헌법재판관을 공연히 임명하지 않은 최상목(대통령 권한대행)의 행위가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린 것과도 배치되는 의견이다.

이 같은 일련의 사태는 3권분립 자체가 작동하지 않음을 뜻한다. 행정, 입법, 사법이 온통 패거리 정치로 화하고, 견제와 균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독주와 갈등이 판을 치고 있다. 분명히 헌법과 법률을 어겼음에도, ‘고도의 통치행위’라고 정당화하고, 위헌, 위법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것이다.

3권분립 자체가 민주가 아니고, 또 그 3권분립이 이렇듯 패악질을 노정하고, 대의 독재, 대의 독주에 이르렀음에도, 여전히 ‘대의제’를 ‘민주’적인 것으로 의제하는 이들이 있다. 제7공화국을 국회 중심의 내각제(책임총리제)로 개헌하자고 주장하는 이들이다. 국회에서 소수당이 다수당의 발목을 잡고, 12.3 내란을 옹호하며, 총리라는 이가 국회추천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고 몽니를 부리고 있는 것을 눈앞에 뻔히 보면서도, 대통령의 권한을 국회로 옮기자고 하고 있으니, 당달봉사가 따로 없다.

대통령을 국민이 뽑았으면, 쫓아내는 권한도 국민이 가져야 한다. 헌법재판소 9명 재판관이 나설 일이 아닌 것이다. 제7공화국의 새 헌법은 국회 내각제로 개헌할 것이 아니라, 3권분립의 맹점을 총제적인 민중의 뜻으로 정리, 해결할 수 있는 국민투표제를 복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은 박정희 독재의 유신헌법을 청산하고, 그 전의 민주적 헌법으로 복귀하는 작업이다.

국민투표는 국회나 대통령만 발안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스스로가 필요에 따라 발안할 수 있어야 하고, 주인인 국민이 발안하는 대상 범위는 무제한이다. 윤석열이 자신의 불법 계엄이 ‘고도의 통치행위’라고 정당화할 때, 그 정당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윤석열 자신이 아니라, 모든 권력의 원천인 국민이어야 한다.

윤석열이 자신의 불법 계엄이 ‘고도의 통치행위’라고 어거지를 쓰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총체적이고 정통성 있는 국민의 뜻을 묻는 절차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절차의 부재가 1987년 헌법이 덜 민주화된 체제임을 상징한다. 오늘의 질곡은 윤석열이 민주화된 체제를 거스르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1987년 헌법 자체가 비민주적이라는 사실을 노정하는 것이다.

둘째, 계엄 발효 행위가 ‘합법적’이라는 윤석열의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이런 주장은 대통령은 불법, 위법한 행위를 했을 때만 책임을 물을 수 있으며, 그렇지 않다면, 그 책임을 묻거나 소추할 수 없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나 실은 그런 것이 아니다.

대통령 선출은 법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이다. 국민이 대통령을 선출할 때 그의 합법성을 보고 뽑는 것이 아니듯이, 쫓아낼 때도 불법, 위법 여부가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다. 잘할 것 같아 뽑은 것이므로, 못할 것 같이 보이면, 쫓아낼 수 있다. 이렇듯, 쫓아내는 것은 합법성 여부와 무관하므로,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여부를 가려 쫓아내고 자시고 할 일이 아니다. 못할 것 같이 보이면, 국민이 바로 발안하여 쫓아낼 수 있어야 한다.

대통령뿐 아니라, 국회의원 등 선출직, 나아가 검사, 판사 등 임명 공직자도 일단 탄핵되면, 그 정당성은 합법성 여부로 가릴 일이 아니다. 법은 사회 질서 유지의 최소한의 기준을 뜻하는 것이므로, 공직자는 사인(私人)과 달라서 최소한의 합법성 여부만 가지고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정치는 수동적인 준법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창조적 형성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거꾸로 법조차 지키지 않고 불법, 위법해 놓고도, 그것을 ‘고도의 정치 행위’라 우기는 것은 12.3 계엄 선포와 똑같은 맥락의 독선이다.

‘고유의 통치행위’와 ‘합법적’이라는 윤석열의 두 가지 전제는 개인의 독선을 넘어, 근 40년 동안 민주적인 것이라 여겨온 1987년 헌법이 가진 결함을 노정한다. 그것은 3권분립이라는 정부 작동의 원리가 지금처럼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 그것을 보정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데 있다.

3권분립 개념 자체가 민주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전자는 권력을 행사하는 이들이 누구도 독재하지 못 하도록 권력을 나누어놓는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분립된 권력이 반드시 국민 민중(민주)을 위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분립한 3권의 권력이 기득권과 관성에 찌들어 민중의 뜻을 배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3권분립 없이도 민주주의는 가능하다. 영국은 의회가 행정부를 장악하고 있어서 3권분립이란 게 없고, 독일이나 프랑스는 사법부가 행정부에 종속되어 있는 2권분립의 국가이지만, 아들 국가를 비민주적인 국가라 말하지 않는다.

민중의 뜻이 주가 되는 민주에는 삼권분립이 존재하지 않는다. 민중이 주인이므로, 주인의 권력을 나눌 필요도 없고, 나누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민중의 뜻은 총체적으로 작동한다. 그 총체적인 의지는, 지금같이 3권이 서로 독주하고 갈등할 때, 그 3권을 통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국민에 의한 3권 통제는 지금같이 대의할 사람을 뽑는 것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직접 사안에 대해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대의 민주제’라는 허상을 타파하고, 자칫 관성과 기득권의 아성으로 변질할 수 있는 ‘대의 과두제’에 대한 통제권을 국민이 확보함으로써 구체화된다.

일 하라고 대통령, 국회의원을 뽑았더니, 일보다 더 많은 권력을 탐하고, 또 차기를 노려 좌고우면 눈치 보고, ‘역풍’ 걱정하느라 복지부동한다. 그러나 국민은 그 자체로서 주인이므로, 차기 권력을 노려 비겁하게 몸을 사리는 일이 없게 된다. 사람을 뽑아 일을 대행하게 하되, 중대 사안에 대해서 직접, 즉각 국민투표로서 결정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윤석열 탄핵도 헌법재판소에서 가릴 법적인 영역이 아니라, 국민투표로서 결정해야 할 정치의 영역이다.

대통령을 쫓아내는 것이 합법성과 무관한 정치의 영역이라는 사실은 또 하나의 중차대한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불법을 저지르기 전에 민중이 예방적으로 공직자를 쫓아내는 것이다. 윤석열이 계엄을 할 것 같다는 의혹이 있을 때, 그 의혹만으로도 직을 박탈할 수 있음을 뜻한다. 12.3일까지 기다릴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언제, 왜 쫓아내느냐 하는 것은 합법성 여부와 무관하게, 위험성의 인지에 따른 것이다.

모든 민주정치의 전범인 고대 아테네에서는 '도편추방'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도편추방'이란 불법, 위법의 증거 없이도, 마음에 들지 않는 위정자를 예방적, 선제적으로 추방하는 제도이다. 최고의 권위를 가진 민회에서 6,000표를 받은 이는 10년간 추방되는데, 그 추방에는 변명이 소용없고 무조건이다. 비수와 같은 권력 남용의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불가피한 예방적 조치였다.

고대 아테네 민중의 정치 행위에 비교해 볼 때, 지금 한국이 헌법재판소에서 위법, 불법 여부를 가려 탄핵을 논한다는 것이 하릴없다. 국민이 9명 헌법재판관에게 종속되어 있고, 정치가 법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한 문제는 그 법조차도 지켜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 헌법재판관이, 총리(권한대행)가 저지른 위헌 행위도, 위법, 위헌이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우스꽝스런 역설은 3권분립이나 헌법재판소가 아니라, 궁극의 정통성으로서, 총제적인 국민 민중의 정치적 의지를 통해서만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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